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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 옷깃의 사람들

대학 대신 기술을 택하는 청년들, '브라운칼라'. 다큐 속 인물부터 커뮤니티의 냉소, 현장의 여성들, 해외 사례까지 — 40대의 눈으로 이 흐름을 따라가 봤습니다.

밝은 작업장에서 갈색 작업 재킷을 입은 젊은 기술자가 장비를 들고 정면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학벌보다 기술을 택하는 '브라운칼라' 세대를 상징하는 사진
밝은 작업장에서 갈색 작업 재킷을 입은 젊은 기술자가 장비를 들고 정면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학벌보다 기술을 택하는 '브라운칼라' 세대를 상징하는 사진

얼마 전 이런 설문 결과를 봤다.

취업을 앞둔 Z세대 2,446명에게 물었단다. 연봉 3천만 원짜리 사무직과 5천만 원짜리 기술직, 둘 중 뭘 고르겠느냐고. 열에 일곱이 기술직을 골랐다. 72퍼센트.

나는 이 숫자 앞에서 잠깐 멈췄다. 물론 조건이 붙은 질문이었다. 기술직 쪽에 2천만 원을 더 얹어줬으니까. 그런데 바로 그 지점이 걸렸다. 우리 때는 2천만 원을 더 준대도 “그래도 사무직”이라 답했을 사람이 훨씬 많았을 거다.

‘브라운칼라’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좀 웃었다. 파란색도 흰색도 아닌 갈색 옷깃이라니. 화이트칼라, 블루칼라까지는 알겠는데 이제 색을 하나 더 만들어야 할 만큼 세상이 다급해졌나 싶었다. 그런데 그 72퍼센트를 보고, 며칠 뒤 다큐 한 편까지 보고 나니 웃을 일이 아니더라. 이건 신조어가 아니라, 우리가 20년쯤 믿어온 ‘좋은 직업’의 정의가 통째로 흔들린다는 신호였다.

나는 왜 웃었나

솔직히 말하면, 내 세대는 이 방향을 무시하도록 배웠다.

우리 부모님은 “공부 안 하면 기술이나 배워야 한다”고 했다. 그 문장에서 ‘기술’은 벌 받는 자리였다. 대학 → 사무직 → 정년, 이 일직선이 정답이었고, 벗어나는 건 실패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런데 지금 20대가 걷는 땅은 내가 걷던 땅과 다르다. 일도, 공부도 안 하고 그냥 쉬었다는 청년이 42만 명을 넘겼고, 3년째 늘고 있다. 대졸 이상에서도 열에 하나는 노동시장 진입 자체에 실패한다. 한쪽에선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다시 오르고, 다른 쪽에선 대기업 생산직에 사람이 몰린다. 같은 세대가 정반대로 보이는 두 곳으로 동시에 달려가는 건, 둘 다 ‘확실한 생존’을 찾는 같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모르고 나는 설문을 보며 ‘요즘 애들이 뭘 몰라서’라고 웃었던 거다. 그 반응이 어디서 왔는지 뜯어보니 근거가 아니라 그냥 오래된 습관이더라. 나는 기술직의 오늘을 한 번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20년 전 이미지를 붙잡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게 좀 부끄러웠다. 그래서 찾아봤다.

다큐에 나온 사람들

내가 본 건 KBS 다큐인사이트 ‘역전의 블루칼라’였다. 2025년 11월에 방영된 편인데, 거기 나온 사람들이 며칠간 마음에 남았다.

이우진 씨는 2001년생이다. 대학을 중퇴하고 3년째 도배 일을 한다. 방송에서 그는, 손으로 직접 공간을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배움과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강의실에서는 못 느끼던 감각이었다고.

고윤후 씨는 배우를 하다 석재 시공으로 옮겨 5년째다. 그는 이 일을 “땀의 가치를 아는 일”이라 표현하면서도, 소득엔 만족하지만 현장의 위험과 변수는 감수해야 한다는 말을 굳이 덧붙였다. 낭만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운동선수 출신 이창현 씨는 청소업으로 자기 사업을 꾸린 7년차다. 남들이 꺼리는 현장일수록 자기를 더 찾는다고 했다. 스펙이 부족하다는 약점이 이 판에선 오히려 진입로가 됐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37년차 미장공 이태현 씨. 그가 한 말이 제일 오래 남았다. 이 손기술만큼은 기계도 AI도 대신 못 한다는 것. 반평생 벽을 바른 사람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은, 뉴스에 매일 나오는 ‘AI 위협’ 이야기보다 훨씬 묵직하게 들렸다.

이들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누구도 등 떠밀려 온 게 아니었다. 각자 다른 길을 걷다가, 스스로 계산해서 건너온 사람들이었다.

숫자를 열어보면

다큐가 감정이라면, 숫자는 골격이다.

하나, 사람이 없다. 서울시가 집계한 뿌리산업 — 금형·용접·주조 같은 제조의 기초 공정 — 종사자 4만 2천여 명 중 30세 미만은 10.8퍼센트뿐이다. 40대 이상이 열에 여섯이다. 전통 공정만 떼어 보면 청년 비중이 4.5퍼센트까지 떨어진다. 현장을 떠받치던 세대는 은퇴를 앞두는데 뒤를 이을 젊은 손이 안 들어온다. 수요는 그대론데 공급이 마르면 남은 사람의 몸값은 오른다. 경제학에서 제일 지루하지만 제일 정직한 그래프다.

둘, 돈 이야기가 바뀌었다. 상징은 현대차 생산직, 이른바 ‘킹산직’이다. 기본급에 성과급과 특근을 얹으면 1년차 연봉이 1억에 육박한다고 알려지면서, 채용 한 번에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이 나왔다. 정년은 60세, 고졸 이상이면 지원할 수 있다. 온라인엔 대기업 생산직을 줄 세운 ‘킹산직 계급도’가 밈으로 몇 년째 돈다. 다만 정직한 단서가 필요하다. 이건 기술직의 최상단이지 평균이 아니다. “기술직=고소득”으로 뭉뚱그리는 순간 누군가는 낭만만 보고 뛰어들었다가 데인다.

셋, AI가 기름을 부었다. 골드만삭스 자료를 보면 AI 대체 위험이 가장 높은 건 프로그래머·회계·법률보조·상담 같은 사무직이고, 가장 낮은 축은 현장과 몸을 쓰는 직종이다. 국내에서도 한국노동연구원이 “생성형 AI의 영향이 청년층과 사무직에서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고 짚었다. “AI가 내 자리 뺏는다는데 전기 기술자 자리는 못 뺏잖아?”라는 20대의 계산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정작, 그들은 ‘브라운칼라’라 부르지 않는다

재밌는 건, 이 흐름의 한복판에 있는 사람들이 정작 ‘브라운칼라’라는 말을 거의 안 쓴다는 점이다. 그건 연구소와 언론이 붙인 이름이고, 현장과 커뮤니티에서는 그냥 ‘킹산직’, ‘생산직’, ‘기술직’이라 부른다.

그 커뮤니티에 들어가 보면 공기가 뜨겁다. “이제 사무직 왜 함?”, “7천 vs 3천이면 당연히 7천”이라는 실리 선언이 넘친다. 앞서 그 설문에서 기술직을 택한 이유를 뜯어보면 이 온도가 설명된다. 압도적 1위는 “노력한 만큼 보상받아서”였고, 그다음이 “쉽게 대체되지 않는 기술을 가질 수 있어서”, 그리고 “정년 걱정이 없어서” 순이었다. 공정한 보상, 대체 불가능성, 안정. 이 세 줄은 뒤집어 읽으면 사무직이 이제 그 셋을 예전만큼 보장하지 못한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내가 다큐에서 받은 인상이 착각이 아니었던 거다. 이건 소수 유별난 청년의 선택이 아니라, 또래 사이에 이미 널리 퍼진 하나의 상식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커뮤니티는, 스스로 찬물을 끼얹는다

여기까지 읽으면 다들 기술직으로 몰려가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이 트렌드의 가장 냉정한 반론은 밖이 아니라 안에서 나온다. 정작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제일 세게 김을 뺀다.

생산직 경험담 게시글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이렇게 말한다. “인터넷 여론만 믿지 말고 직접 해봐라.” 킹산직 밈에 자기 진영이 먼저 찬물을 끼얹는 셈이다. 힘든 건 일 자체가 아니라 주야 2주 교대라는 얘기가 반복된다. 하루 열두 시간, 야간에서 주간으로 넘어갈 때 무너지는 생활 리듬, 달고 사는 수면장애와 소화기 질환. “80퍼센트는 힘든 환경이고, 진지하게 버티는 사람은 20퍼센트”라는 자조도 흔하다.

돈 이야기의 뒷면도 가차 없다. 1억을 받는 건 대기업 정규직 극소수고, 대부분은 파견이나 중소업체다. “성수기엔 300만, 비수기엔 180만”, “야간 근무 중에 전화 한 통으로 잘렸다”는 파견직의 취약함이 줄줄이 올라온다. 용접 3년차의 글은 제목부터 단호하다. 돈만 보고 왔다면 후회한다고. 유리섬유를 마셔가며 개고생하고, 신입은 단가 낮은 조공부터, 고단가 현장은 베테랑이 독점하고, 실력보다 운과 인맥이 앞선다고.

그리고 나이. 체력을 쓰는 직종은 “늦어도 40대 중반엔 들어가야 하고, 50이 넘으면 몸이 못 따라간다”고 한다. 중년 게시판엔 “40 넘으니 이력서를 받아주는 곳이 없다”는 한숨이 쌓여 있다. 청년의 낭만과, 그 낭만이 도착할 20년 뒤의 현실이 한 화면에서 충돌한다.

이 냉소가 나는 오히려 좋았다. 미화만 가득한 트렌드는 거품이지만, 당사자들이 스스로 브레이크를 거는 트렌드는 조금 더 믿어도 된다는 뜻이니까.

갈색 옷깃의 여자들

여기까지 쓰면서 나는 계속 ‘그들’이라고 뭉뚱그렸는데, 다큐에서도 커뮤니티에서도 그 ‘그들’은 대체로 남자였다. 그런데 이 문을 여는 사람 중에는 여자들도 분명히 있고, 그들에게는 문이 한 겹 더 무겁다.

숫자부터 보면 흐름은 뚜렷하다. 건설업 여성 취업자는 2020년 약 21만 명에서 2024년 26만 명으로 늘었다. 국가기술자격 건설기능사 여성 합격자는 같은 기간 2만 8천 명대에서 3만 9천 명대로, 40퍼센트 가까이 뛰었다. 현장으로 들어오는 여성이 실제로 늘고 있는 것이다.

들어온 사람들의 사연은 제각각이다. 스물아홉 살 김승주 씨는 중학교 때부터 장래희망 1순위가 크레인 기사였다. 지게차를 몰던 아버지를 보고 자란 딸이었다. 그런데 취업 과정에서 들은 말들이 가관이다. “어린 여자라 상처받을 것 같다”, “여자는 결혼하면 그만둬서 못 믿는다”며 거절당했고, 첫 직장에선 “건방지게 남자 일 뺏냐”, “미용 일이나 하지”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 그가 지금 다니는 직장 만족도를 묻는 질문엔 10점 만점에 10점이라 답했다.

스물두 살 목수 이아진 씨는 40킬로그램짜리 합판을 들기 위해 근력운동을 했다. 처음엔 ‘어린 여자애’라 팀원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얼굴마담”이라는 말도 들었다. 무급으로 시작한 일이 지금은 일당 20만 원이 됐고,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를 보고 여성 후배들이 이 길로 들어왔다. 그는 자기에게 롤모델이 없었다는 걸 진입의 가장 큰 장벽으로 꼽았다.

공장에서 유일한 여성 용접사였던 변주현 씨는 동료들의 무관심 속 고립을 견디면서도, 용접이 자기한테 맞더라며 평생 하겠다고 했다.

이들의 이야기엔 남성 사례엔 없던 장벽이 하나씩 더 붙는다. 한 국책연구기관이 여성 건설노동자 500여 명에게 물었더니, 여자 화장실에 세면대조차 없는 현장이 셋에 둘꼴이었다. 일을 그만둔 여성의 절반 가까이가 성희롱·성차별을 그 이유로 꼽았다. 작업복조차 남성용밖에 없어 몸에 안 맞는 옷을 직접 잘라 입거나 사비로 사 입는다는 20년차 용접사의 이야기도 있었다. 기술이 나이도 성별도 가려주지 않는다는 건, 뒤집으면 현장이 아직 그들을 위한 화장실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도 이들은 나가지 않는다. 오히려 유튜브로 자기 실력을 증명하고, 그걸 본 후배가 다시 문을 두드린다. 롤모델이 없다던 자리에 스스로 롤모델이 되는 셈이다. 갈색 옷깃이 정말 옷깃 색으로 사람을 안 가리는 색이 되려면, 아마 이 대목이 마지막 관문일 것이다.

이건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궁금해서 바다 건너를 찾아봤다. 그랬더니, 놀랍도록 익숙한 장면이 거기에도 있었다.

일본에서는 “AI에 대체될 걱정이 없다”며 사무직을 마다하고 블루칼라로 옮기는 청년들이 기사로 다뤄지고, 그 기사가 국내에서도 나란히 소비된다. 미국은 더 노골적이다. 한 지역 언론이 소개한 스물두 살 청년은 컴퓨터공학을 공부하다 전기 기술로 방향을 틀었는데, 이유가 우리와 똑같았다. AI 확산이 불안해서. 아버지의 정비소를 잇겠다는 청년도, 아홉 달짜리 용접 과정을 마치고 5년 뒤 억대 연봉을 기대한다는 청년도 있었다.

나라도 언어도 다른데 계산의 논리는 판박이다. 이게 뜻하는 건 하나다. 브라운칼라는 한국 취업난이 낳은 일시적 부산물이 아니라, AI라는 공통의 변수 앞에서 여러 사회가 동시에 도달한 결론이라는 것. 한 나라의 유행이라면 지나가길 기다리면 되지만, 여러 사회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건 좀 더 무게 있게 봐야 한다.

왜 하필 지금인가

여기서 당연한 의문이 든다. “기술 배워라”는 말은 옛날에도 있었잖은가. 맞다. 그런데 그때와 지금은 결정적으로 다르다.

과거의 기술은 대학에 못 간 사람의 차선책이었다. 지금의 기술은 대학을 나온, 심지어 다니던 학교를 스스로 그만둔 사람이 능동적으로 고르는 길이다. 차선이 아니라 전략이 됐다. 무엇이 이 반전을 만들었나. 세 가지가 동시에 겹쳤다.

첫째, 학벌의 값이 떨어졌다. 대졸이 흔해질 대로 흔해지면서, 졸업장 한 장이 보장하던 프리미엄이 얇아졌다. 둘째, AI가 사무직이라는 안전지대를 흔들었다. 늘 안전하다 여겨지던 ‘책상 앞 일’이 처음으로 대체 후보 1순위에 올랐다. 셋째, 일부 기술직의 소득이 사무직을 앞질렀다. 이 세 가지가 각각도 아니고 한꺼번에 일어난 적은, 적어도 내 기억엔 없었다. 브라운칼라는 그 세 물결이 만나는 지점에서 태어난 셈이다.

갈색이라는 이름

이 단어를 국내에서 처음 진지하게 정의한 곳은 뜻밖에도 국책연구기관이었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은 2023년 보고서에서 브라운칼라를 이렇게 설명했다. 학력이나 이전 직업과 상관없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접목해 육체노동을 혁신하고 새로운 틈새를 개척하며,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의 이분법적 경계를 무너뜨리는 사람들.

읽고 나니 다큐 속 얼굴들이 겹쳤다. 대학을 그만둔 도배공, 배우를 하다 온 석재공, 운동선수였던 청소업 사장. 이들은 파란 옷깃도 흰 옷깃도 아니었다. 그 사이 어딘가, 자기가 직접 칠한 갈색 옷깃을 입고 있었다.

멀리 독일에는 ‘마이스터’라 불리는 숙련 기술자 제도가 있다. 흔히 오해하듯 “독일은 다 대학 안 가고 마이스터가 된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진로가 갈리는 이원화 시스템일 뿐, 대학 진학도 활발하다. 다만 마이스터가 존경받는 이유는 들여다볼 값이 있다. 그건 그냥 손이 야무져서가 아니다. 독일에서 마이스터 자격을 따려면 전공 실기만이 아니라 경제와 법률, 그리고 후배를 가르치는 교육 능력까지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다시 말해 마이스터는 곧 자기 사업을 열고 도제를 길러낼 자격이다. 기술자가 ‘고용된 손’에 머물지 않고 한 분야의 주인이 되는 경로가 제도로 깔려 있는 것이다. 1969년 직업교육훈련법으로 다져진 이 시스템은 독일 강소기업들의 인력 기반으로 꼽힌다. 옷깃의 색으로 사람을 줄 세우지 않는 사회가, 이미 하나쯤은 굴러가고 있다는 뜻이다.

늦게 도착한 사람

다큐를 보고, 숫자를 뒤지고, 커뮤니티의 냉소에 바다 건너 사례까지 읽고 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의외로 단순하다.

미화는 경계해야 한다. 몸은 갈리고, 1억은 극소수이고, 파견의 현실은 냉혹하다. 그 모든 단서를 다 달고도, 방향은 맞다고 본다. AI가 사람의 일을 얼마나 가져갈지 아무도 모르는 시대에, 남이 쉽게 대신 못 하는 기술을 손에 쥔 사람은 적어도 굶지는 않는다. 옷깃이 파랗든 희든 갈색이든, 그게 내가 이 흐름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다.

브라운칼라라는 단어가 진짜로 가리키는 건 특정 직업이 아닌 것 같다. 그것은 ‘좋은 직업’을 판단하는 기준이 학벌과 간판에서, 대체 불가능성과 실질 소득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신호다. 그 이동 앞에서 제일 당황한 건 20대가 아니라, 옛날 지도를 아직 손에 쥐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갈색 옷깃. 처음엔 웃었지만, 지금은 꽤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참고 자료

  • 한국직업능력연구원(KRIVET). 『‘브라운칼라’의 새로운 진로경로에 관한 연구』. 2023-10-31 확인. 자료 보기
  • KBS 다큐인사이트 ‘역전의 블루칼라’. 2025-11-13 방영. 관련 보도(스포츠경향). 자료 보기
  • 캐치(catch). Z세대 취준생 ‘사무직 vs 기술직’ 설문. 자료 보기
  • 이투데이. 서울시 뿌리산업 종사자 고령화. 2026-04-21. 자료 보기
  • 뉴스1. ‘쉬었음 청년’ 42만 명. 자료 보기
  • Goldman Sachs Research. How will AI affect the global workforce. 2025-08-13. 자료 보기
  • 한국경제. 일본 청년들의 블루칼라 이직. 자료 보기
  • 한국일보. 29세 여성 크레인 기사 김승주. 2025-04-26. 자료 보기
  • 프레시안. 여성 목수 이아진 / 블루칼라 여성 5년간 5만 명 증가(고용노동부·산업인력공단 통계). 자료 보기
  • 일다. 20대 여성 용접사 변주현. 2021-05-25. 자료 보기
  •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여성 건설근로자 취업현황과 정책방안(500여 명 설문). 자료 보기

고지

  • 본 글의 자료 조사와 초안 정리는 AI 도구의 보조를 받았고, 관점·편집·사실 확인은 META TOUR 편집팀이 직접 했습니다. 인물 사례는 모두 실제 언론 보도에 근거하며, 지어낸 일화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