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투 앞에서 멈추는 손 — 축의금 10만원 시대의 셈법
모바일 청첩장을 받고 축하 송금 화면까지는 금방 갔다. 문제는 금액 칸이었다. 5를 누를까 10을 누를까. 커서가 깜빡이는 동안 나는 그 친구와 마지막으로 밥을 먹은 게 언제인지, 내 결혼식에 그가 얼마를 냈는지, 요즘 시세가 얼마라던지를 순서 없이 뒤졌다. 송금 버튼 하나 누르는 데 3분이 걸렸다.
그 3분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최근에 알았다. 지난 7월, 한 커뮤니티 사연이 뉴스까지 올라왔다. 지방에 사는 하객이 서울 결혼식에 10만원을 내고 왔다가 “서울은 식대가 다르다, 20만원은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는 이야기. 댓글창은 갈라졌고, 기사는 며칠 사이 여러 매체로 번졌다. 봉투 앞에서 멈추는 손이 전국에 있다는 뜻이다.
축의금은 언제부터 이렇게 어려워졌을까. 그리고 “서울은 20만”이라는 말은 사실일까. 마침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데이터가 최근 몇 달 사이 꽤 쌓였다. 송금 앱의 실거래 기록, 은행의 이체 533만 건 분석, 직장인 설문. 숫자를 따라가 보니, 축의금의 세계에서 지난 몇 년 사이 조용한 사건 하나가 진행 중이었다.
5만원에서 10만원까지, 6년
작년 12월 카카오페이가 ‘2025 머니리포트’를 내며 흥미로운 수치를 하나 공개했다. 축의금 송금봉투로 오간 금액의 평균이 2025년 처음으로 10만원을 넘었다는 것이다. 2019년에는 평균 5만원 수준이었다. 6년 만에 두 배가 됐다.
중간 경로도 남아 있다. 2021년 평균 7만 3천원, 2024년 9월 기준 9만원. 매년 조금씩, 그러나 한 방향으로만 움직였다. 그 사이 물가는 얼마나 올랐을까. 공식 연간 상승률을 누적해 보면 2019년부터 2025년까지 약 17% 오른 셈이다(공식 연간치 기반 계산). 밥값이 유난히 많이 올랐다는 외식 물가도 5년간 24~25% 상승이다. 축의금은 100% 올랐다.
물가의 세 배, 네 배 속도로 오른 지출 항목은 흔치 않다. 게다가 축의금에는 가격표도, 인상 공지도 없다. 누가 올린 걸까.
”서울은 20만원”의 실체
먼저 저 소문부터 확인하자. 결론만 말하면, “서울은 20만원”을 뒷받침하는 공식 조사는 없다. 7월에 번진 그 이야기는 설문도 통계도 아닌 커뮤니티 사연 하나에서 출발했다. 광주의 식대 5만원짜리 결혼식과 서울의 7만원대 결혼식에 똑같이 10만원을 냈다가, “서울은 원가가 다르다”는 지적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실측 데이터를 열어 보면 이야기가 재미있어진다. NH농협은행이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축의금 명목의 이체 533만 건(고객 115만 명)을 분석해 올해 5월 발표했는데, 2025년 전국 평균은 11만 7천원이었다. 그리고 지역별 1위가 바로 서울, 13만 4천원이다. 부산 12만 8천원, 광주 12만 4천원이 뒤를 이었고 가장 낮은 세종은 10만 2천원이었다.
그러니까 “서울 20만”은 데이터상 과장이다. 하지만 “서울이 제일 비싸다”는 감각 자체는 실측과 일치한다. 소문은 늘 이런 식이다 — 방향은 맞고, 숫자는 부풀려져 있다. 서울과 세종의 격차가 3만원 남짓이라는 걸 보면, 지역보다 더 큰 변수는 따로 있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
지역보다 크게 갈리는 것, 나이
실제로 지역보다 선명하게 갈리는 건 세대다. 카카오페이의 2024년 9월 기준 집계에서 20대의 평균 축의금은 약 6만원, 30~40대는 10만원, 50~60대는 12만원이었다. 가장 어린 하객과 가장 연배 있는 하객 사이의 격차가 두 배다. 서울과 세종의 차이보다 훨씬 크다.
이 격차는 야박함의 차이가 아니라 사정의 차이로 읽는 게 맞을 것이다. 20대에게 축의금은 소득 대비 지출이 가장 무거운 세대 행사비고, 50~60대에게는 수십 년 쌓인 품앗이 장부의 정산이자 자녀 결혼식에서 돌려받을 곗돈에 가깝다. 같은 예식장, 같은 테이블에 앉아도 봉투 속 금액이 다른 이유가 각자의 대차대조표에 있는 셈이다.
흥미로운 건 ‘적정 금액’을 묻는 투표에서도 세대가 갈렸다는 점이다. 카카오페이가 2024년 11월 이용자 7만 4,652명에게 물었을 때 전체의 58%는 10만원을 골랐지만, 40대만 유독 5만원을 가장 많이 골랐다. 축의금 낼 일이 가장 잦은 세대가 가장 보수적인 답을 골랐다는 건, 이 숫자가 마음이 아니라 빈도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걸 보여준다. 한 달에 청첩장이 세 장 오는 사람에게 5만과 10만의 차이는 곱하기 세 번의 차이다.
봉투 값을 밀어 올린 세 개의 손
그 변수들을 하나씩 짚어 보면, 축의금이 물가보다 빨리 오른 이유가 대략 세 갈래로 정리된다.
첫 번째 손은 식대다. 한국소비자원이 전국 웨딩홀 351곳을 조사한 결과(2026년 2월 기준), 코스 요리 식대는 1인 평균 11만 9천원이다. 뷔페가 6만 2천원, 한상차림이 5만 5천원. 코스식 예식의 최소보증인원은 평균 218명이다. 10만원을 내고 코스 식사를 하면 산술적으로 혼주에게 적자를 안기는 셈이 된다. “밥값은 하고 와야지”라는 오래된 규범이, 밥값이 오르자 봉투를 끌고 올라간 것이다. 호텔 예식 앞에서 봉투가 더 두꺼워지는 것도 같은 원리다. 신한은행 보통사람 보고서(2023년 조사)에서 사람들은 봉투만 보낼 땐 8만원, 참석하면 11만원, 호텔 예식이면 12만원을 내겠다고 답했다. 금액을 정하는 건 관계의 깊이만이 아니라, 내가 앉을 테이블의 단가이기도 하다.
두 번째 손은 기준선의 이동이다. 인크루트가 직장인 844명에게 물은 2025년 5월 설문에서, 결혼식에 참석해 식사하는 경우 직장 동료 축의금으로 61.8%가 10만원을 골랐다. 5만원은 32.8%였다. 그런데 같은 조사의 2023년판에서는 순위가 반대였다. 업무상 동료 기준 5만원이 65.1%로 압도적 1위였던 것. 불과 2년 사이에 다수의 답이 5만에서 10만으로 자리를 바꿨다. 관계별로 보면 분화도 진행 중이다. 같은 설문에서 ‘친한 동료’라면 10만원(59.7%) 다음으로 20만원(14.3%)과 15만원(12.7%)이 올라온다. 10만원은 이제 상한선이 아니라 출발선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동조 속도를 높인 조연이 하나 더 있다. 축의금이 봉투에서 앱으로 옮겨 갔다는 사실이다. 카카오페이 송금봉투 이용은 5년 새 360% 늘었다. 종이 봉투 시절의 축의금은 접수대 장부 속에만 남는 사적인 숫자였다. 그런데 계좌와 앱으로 오가는 순간 축의금은 집계되는 데이터가 됐고, 해마다 ‘평균 얼마’라는 기사가 나오고, 그 기사가 다시 다음 봉투의 참고서가 된다. 시세가 훤히 보이는 시장에서 가격은 빨리 수렴한다. 축의금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축의금은 각자 정하는 것 같지만 실은 ‘남들이 얼마 내는지’를 참조해 정해지는 값이라, 다수의 기준선이 옮겨 가면 나머지가 따라간다.
세 번째 손은 뜻밖에도 지갑 속에 있다. 2009년 6월, 한국은행이 5만원권을 처음 발행했다. 그 전까지 축의금 봉투의 기본 단위는 1만원권 석 장, 다섯 장이었다. 5만원권이 나오면서 ‘한 장’이 5만원이 됐고, 한국은행 조사에서 5만원권 사용처의 4분의 1가량이 경조금이었을 만큼 이 지폐는 사실상 경조사 전용권처럼 자리 잡았다. 문제는 한 장의 다음이 두 장, 즉 10만원이라는 것이다. 7만원, 8만원이라는 중간값은 지폐 조합이 애매해 봉투에서 밀려난다. 축의금이 5만→10만으로 계단식 점프를 한 데에는, 물가나 마음 씀씀이 못지않게 화폐 단위라는 물리적 사정이 깔려 있다.
받는 쪽에도 계산기가 있다
하객의 봉투 이야기만 했지만, 이 시세를 밀어 올리는 압력은 접수대 건너편에서도 온다.
한국소비자원의 같은 조사에서 결혼서비스 비용은 전국 평균 2,139만원이었다(2026년 2월 기준, 예식 유형을 통틀은 평균). 서울 강남권은 3,466만원으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 그리고 앞서 본 숫자 하나가 여기서 다시 무거워진다 — 코스식 예식의 최소보증인원, 평균 218명. 하객이 그보다 적게 와도 혼주는 218인분 식대를 내야 한다는 뜻이다. 1인 11만 9천원짜리 코스로 계산하면 식대만 2,500만원이 넘는 산술이 나온다. 뷔페나 한상차림이면 절반 아래로 내려가지만, 어느 쪽이든 하객 수만큼의 밥값이 예식의 몸통이라는 구조는 같다.
그러니 혼주 쪽에도 계산기가 켜진다. 예식 비용의 상당 부분을 축의금 합계로 메우는 관행 속에서, 하객 한 명 한 명의 봉투는 혼주에게 손익의 문제가 된다. “축의금은 마음”이라고 서로 말하지만, 한쪽은 밥값을 계산하고 다른 쪽은 보증인원을 계산한다. 하객의 ‘밥값은 해야지’와 혼주의 ‘본전은 맞춰야지’가 톱니처럼 맞물려, 시세는 어느 한쪽이 멈추자고 해서 멈출 수 없는 물건이 됐다. 서울 축의금이 전국 1위인 것도 서울 사람이 후해서가 아니라, 이 톱니가 서울에서 가장 빡빡하게 돌기 때문일 것이다.
오른 게 아니라, 사라지는 중이다
여기까지 보면 “축의금이 올랐다”고 요약하게 되지만, NH농협 데이터를 한 겹 더 들여다보면 표현을 고치고 싶어진다. 오른 게 아니라, 5만원이라는 선택지가 사라지는 중이다.
2025년 기준 축의금에서 가장 흔한 금액은 여전히 5만원이다(비중 42.3%). 그런데 이 비중은 해마다 줄고 있고, 그 자리를 10만원(39.7%)과 20만원(7.5%)이 채우며 올라온다. 평균 10만원 시대라는 건 모두가 10만원을 낸다는 뜻이 아니라, 5만원파와 10만원파가 교대하는 과도기라는 뜻이다. 지금 봉투 앞에서 손이 멈추는 이유가 정확히 이것이다. 기준이 두 개인 시대에는 어느 쪽을 골라도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다.
그리고 이 교대가 끝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데이터는 슬쩍 보여준다. NH농협 집계에서 100만원 이상 고액 축의금의 비중은 2023년 2.95%에서 2025년 3.36%로 늘었다. 서른 건에 한 건꼴로는 봉투에 ‘월급 단위’가 들어간다는 얘기다. ‘호텔이면 15만원은 기본’이라는 말이 도는 것도 같은 방향의 신호다. 5만원권이 만든 계단은 위로만 이어져 있다.
이쯤에서 축의금의 원래 얼굴을 떠올려 보게 된다. 축의금은 본래 품앗이였다. 목돈 드는 날 서로 보태고, 장부에 적어 두고, 내 차례에 돌려받는 상호부조. 그런데 지금의 축의금은 점점 ‘참석 정산’에 가까워지고 있다. 내가 앉은 테이블의 식대, 예식장의 급, 오간 시세를 반영해 값을 치르는 것. 마음의 표시였던 봉투가 밥값 영수증을 닮아 가는 동안, 정작 지갑 사정은 월급보다 지출이 빠르게 늘어나는 시대다. 봉투가 무거워질수록 청첩장이 반갑지 않아지는 건, 그래서 개인의 야박함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내 기준은 내가 정해 둔다
혼인 건수는 2025년 24만 건으로 한 해 전보다 8.1% 늘었다. 2년 연속 증가다. 오래 뜸했던 청첩장이 다시 늘어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봉투 앞에서 멈추는 3분도 그만큼 자주 찾아올 것이다.
데이터를 다 따라와 보고 내가 내린 결론은 소박하다. 관계의 가격을 그때그때 시세에 묻지 말고, 내 기준을 미리 정해 두자는 것.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참석해서 식사하면 10만원, 봉투만 보내면 5만원, 각별한 사이면 거기에 마음을 더한다 — 그리고 내 사정이 어려운 시기엔 그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숫자 자체는 각자 다를 수 있다. 중요한 건 기준이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는 감각이다. 물가가 내 만원의 힘을 매년 조금씩 깎아 가는 세상에서, 남의 시세대로 사는 건 생각보다 비싸다.
다음 청첩장이 오면, 나는 아마 또 3분쯤 멈출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남들이 얼마 내는지 검색하는 3분이 아니라, 그 친구와의 시간을 헤아리는 3분이었으면 한다. 봉투에 담기는 게 시세가 아니라 마음이라는 말은 낡았지만, 낡은 말이 다 틀린 말은 아니다.
참고 자료
- 카카오페이. 2025 머니리포트 — 축의금 송금봉투 평균 10만원 첫 돌파(2019년 약 5만원 대비 약 2배). 2025-12-10. 2026-07-27 확인. 자료 보기
- 카카오페이. 송금봉투 축의금 트렌드 — 2021년 7만 3천원·2024년 9월 9만원, 연령대별 20대 6만/30~40대 10만/50~60대 12만원, 적정 축의금 투표 58% ‘10만원’(74,652명). 2024-11-04. 2026-07-27 확인. 자료 보기
- NH농협은행. 축의금 이체 533만 건 분석(2023~2025, 고객 115만 명) — 2025년 전국 평균 11만 7천원, 서울 13만 4천원 최고, 5만원 비중 42.3% 감소·10만원 39.7% 확대. 2026-05-14 발표. 2026-07-27 확인. 자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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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소비자원. 결혼서비스 가격 조사(전국 웨딩홀 351곳, 2026년 2월 기준) — 식대 코스 11만 9천원·뷔페 6만 2천원·한상 5만 5천원, 코스 최소보증인원 평균 218명. 2026-03-30 보도. 2026-07-27 확인. 자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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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행·KDI 경제정보센터. 5만원권 최초 발행(2009-06-23) 및 경조금 사용 비중 관련. 2026-07-27 확인. 자료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