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가 떨어지면 좋은 거 아닌가요 — 디플레이션이 더 무서운 이유
디플레이션은 물가가 '계속' 떨어지는 상태입니다. 싸지면 좋을 것 같지만 소비를 미루고, 빚을 무겁게 만들고, 중앙은행의 무기까지 무력화합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과 지금 진행 중인 중국 사례로 왜 인플레이션보다 무서운지 처음 보는 눈높이에서 정리했습니다.
물가가 오른다는 뉴스에는 다들 한숨을 쉽니다. 장바구니가 가벼워지고 월급은 제자리니까요. 그래서 반대로 “물가가 좀 떨어지면 좋겠다”는 말도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같은 돈으로 더 많이 살 수 있으면 그게 좋은 일 아닌가요.
한 번이라면 맞습니다. 그런데 물가가 계속 떨어지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경제학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상태 중 하나가 바로 이 ‘지속적인 물가 하락’, 디플레이션입니다. 많은 전문가가 적당한 인플레이션보다 디플레이션을 더 위험하게 봅니다. 한번 빠지면 빠져나오기가 훨씬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그 역설을 따라갑니다. 싸지는 게 왜 무서운지, ‘좋은 하락’과 ‘나쁜 하락’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과 지금 눈앞의 중국이 무엇을 보여주는지까지. 끝까지 읽으면 “물가가 떨어진다”는 뉴스가 반가운 소식이 아니라 경고등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핵심 요약
- 디플레이션은 물가의 ‘지속적 하락’입니다. 물가가 오르되 상승률만 느려지는 디스인플레이션과는 다릅니다 — IMF.
- 무서운 이유는 셋입니다. ① 다들 소비를 미루는 악순환, ② 빚의 실질 부담이 저절로 커지는 부채-디플레이션, ③ 금리를 0% 밑으로 내리기 어려워 중앙은행의 무기가 막히는 것.
- 일본은 1998~2012년 물가가 누적 약 4% 하락했고, 닛케이225는 1989년 고점을 34년 만인 2024년 2월에야 회복했습니다 — BIS·Nippon.com.
- 지금은 중국이 실험 중입니다. 2025년 8월 CPI -0.4%, 생산자물가는 3년 넘게 마이너스 — 중국 통계국·CNBC. 반면 한국은 2026년 5월 +3.1%로 디플레이션과는 거리가 멉니다 — 기재부·통계청.
잠깐 — 이 글은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디플레이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하는 교육용 글입니다. 특정 상품을 권하지 않으며, 모든 금융 판단과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본문의 지표는 작성일 기준이라 이후 달라질 수 있습니다.
디플레이션이 정확히 뭔가요 — 물가가 ‘계속’ 떨어지는 상태
IMF는 디플레이션을 “소비자물가지수나 GDP 디플레이터 같은 물가 지표의 지속적 하락”으로 정의합니다 — IMF. 핵심 단어는 지속적입니다. 명절 뒤 채솟값이 며칠 내리는 건 디플레이션이 아닙니다. 여러 달, 길게는 여러 해에 걸쳐 전반적인 물가가 아래로 흐르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많이 헷갈리는 짝꿍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디스인플레이션입니다. 둘은 전혀 다릅니다. 디스인플레이션은 물가가 여전히 오르되 그 속도만 느려지는 것입니다. 작년에 4% 올랐던 물가가 올해 2%만 오르면, 물가는 분명 더 비싸졌지만 상승률은 떨어진 것 — 이게 디스인플레이션입니다 —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반면 디플레이션은 물가 자체가 내려가, 상승률이 마이너스가 된 상태입니다.
체온에 비유하면 깔끔합니다. 인플레이션은 경제가 열이 나는 것, 디스인플레이션은 그 열이 내려 정상으로 가는 것, 디플레이션은 정상을 지나 저체온증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열도 위험하지만, 저체온도 그에 못지않게 위험합니다. 오히려 한번 떨어지면 스스로 데우기가 더 어렵습니다. 왜 그런지, 세 가지 무서움으로 나눠 보겠습니다.
그럼 싸지는 게 왜 나빠요 — ‘좋은’ 디플레이션과 ‘나쁜’ 디플레이션
먼저 균형부터 잡고 가겠습니다. 모든 물가 하락이 재앙은 아닙니다. 갈림길은 물가가 ‘왜’ 떨어지느냐에 있습니다. IMF도 디플레이션을 단순 정의로 끝내지 않고, 공급·생산성 요인에 따른 하락과 수요 붕괴形 하락을 구분해 분석합니다 — IMF.
‘좋은 디플레이션’은 공급 쪽에서 옵니다. 기술이 좋아지고 생산성이 올라, 같은 돈으로 더 나은 물건을 사게 되는 경우입니다. 반도체·평판 TV·스마트폰 가격이 해마다 내려간 것이 대표적입니다. 물건값은 떨어졌지만 기업은 더 많이 팔아 이익을 내고, 소비자는 이득을 봅니다. 모두가 웃는 하락입니다.
문제는 ‘나쁜 디플레이션’입니다. 이건 수요 쪽에서 옵니다. 경기가 식어 물건이 안 팔리니, 기업이 어쩔 수 없이 값을 내리는 경우입니다. 같은 가격표 하락이라도 원인이 정반대입니다. 좋은 디플레이션이 “잘 만들어서 싸진 것”이라면, 나쁜 디플레이션은 “안 팔려서 싸진 것”입니다. 그리고 경제가 두려워하는 건 언제나 후자입니다.
| 구분 | 좋은 디플레이션 | 나쁜 디플레이션 |
|---|---|---|
| 원인 | 기술·생산성 향상(공급) | 수요 붕괴·소비 위축 |
| 대표 예 | 반도체·스마트폰 가격 하락 | 일본 1990~2000년대, 대공황 |
| 기업 매출 | 더 많이 팔려 늘어남 | 물량까지 줄어 함께 감소 |
| 결과 | 소비자·기업 모두 이득 | 임금·고용·투자 동반 위축 |
이제부터 다루는 ‘무서운 디플레이션’은 모두 오른쪽, 나쁜 디플레이션입니다. 첫 번째 무서움부터 보겠습니다.
첫 번째 무서움 — 다들 지갑을 닫는 악순환
나쁜 디플레이션이 무서운 첫째 이유는 소비가 멈춘다는 데 있습니다. 물가가 계속 떨어진다는 믿음이 퍼지면, 사람들은 합리적으로 구매를 미룹니다. “지금 사는 것보다 석 달 뒤가 더 싸다”면 큰 지출일수록 미루는 게 이득이니까요.
문제는 한 사람에게 똑똑한 그 ‘기다림’이 모이면 경제 전체를 얼린다는 점입니다. 소비가 미뤄지면 기업 매출이 줄고, 매출이 줄면 임금과 고용을 깎고, 소득이 줄면 소비가 더 막힙니다. 그리고 안 팔리니 기업은 값을 또 내립니다. 물가 하락이 다시 ‘더 기다리자’는 심리를 부추기는, 빙글빙글 도는 나선입니다.
이건 이론만이 아닙니다. 2025년 중국에서는 소비 위축 속에 기업들이 가격 인하 경쟁에 내몰렸습니다. 그해 8월 식료품 물가는 전년보다 4.3% 내렸고, 돼지고기는 16.1%나 떨어졌습니다 — 중국 통계국. 싸지는데도 경기가 가라앉는, 디플레이션의 전형적인 얼굴입니다. 적당한 인플레이션이 “지금 사자”는 신호라면, 디플레이션은 “조금만 더 기다리자”는 신호를 끝없이 보냅니다. 그 신호가 경제의 피를 멈추게 합니다.
두 번째 무서움 — 빚이 저절로 무거워진다
두 번째가 가장 무섭습니다. 디플레이션은 가만히 있어도 빚을 키웁니다. 1933년 경제학자 어빙 피셔는 대공황을 분석하며 이 메커니즘에 ‘부채-디플레이션(debt-deflation)‘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 Econometrica, 1933.
원리는 이렇습니다. 내가 1억 원을 빌렸다고 해봅시다. 물가가 오르면 돈 가치가 떨어져 1억의 실질 무게가 가벼워집니다. 인플레이션이 빚진 사람에게 은근히 유리한 이유입니다. 그런데 디플레이션은 정반대입니다. 물가가 내리면 돈 가치가 올라, 빚 1억의 실질 무게가 저절로 무거워집니다. 내 소득과 자산 가격은 떨어지는데, 갚아야 할 원금 숫자는 그대로 남기 때문입니다.
피셔가 포착한 역설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갑니다. 빚이 무거워지니 사람들은 갚으려고 자산을 내다 팝니다. 그런데 다들 동시에 팔면 자산 가격이 더 떨어지고, 물가도 더 내려가, 빚의 실질 무게는 갚을수록 오히려 커집니다. 피셔의 표현을 빌리면 “갚으려 애쓸수록 더 빚지게 되는” 상황입니다. 이 부채-디플레이션 나선은 이후 버냉키 같은 정책결정자들이 금융위기에 대응할 때 핵심 교본이 됐습니다.
빚이 어떻게 경제 전체에 퍼져 있는지는 신용창조 글 — 은행은 내 돈을 금고에 두지 않는다에서 다뤘습니다. 시중 돈의 9할 이상이 누군가의 빚으로 만들어진 돈인데, 그 빚이 일제히 무거워지는 상황을 떠올리면 디플레이션의 공포가 실감 납니다.
세 번째 무서움 — 중앙은행의 무기가 먹히지 않는다
세 번째는 구조적입니다. 디플레이션 앞에서는 중앙은행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무뎌집니다. 평소 경기가 식으면 중앙은행은 금리를 내려 돈을 풉니다. 그런데 금리는 0% 밑으로 내리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른바 ‘제로금리 하한’입니다.
왜 0%가 벽일까요. 금리가 마이너스가 되면, 돈을 맡긴 사람이 오히려 보관료를 내야 합니다. 그럴 바엔 차라리 현금을 장롱에 쌓아두는 게 낫습니다. 그래서 중앙은행이 아무리 금리를 내려도, 물가가 떨어지는 속도가 더 빠르면 ‘실질금리’(명목금리 − 물가상승률)는 거꾸로 높아지는 함정에 빠집니다. 경기를 데우려 불을 지피는데, 디플레이션이 그 불을 꺼버리는 셈입니다.
그래도 끝까지 가본 나라들이 있습니다. 일본은행은 2016년 1월, 단기금리를 사상 처음 **마이너스(-0.1%)**까지 내렸습니다. “돈을 금고에 쌓지 말고 대출로 내보내라”는 벌금형 압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마이너스 금리를 무려 8년간 끌고 가다, 2024년 3월 19일에야 17년 만의 금리 인상과 함께 해제했습니다 — CNBC. 세계 마지막 마이너스 금리의 종료였습니다. 0% 아래로 내려가는 이 극단적 실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기준금리 글 — 0 아래로 내려간 나라들에서 더 자세히 풀었습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 디플레이션이 길어지면
이 세 가지 무서움이 한꺼번에, 그것도 오래 작동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준 나라가 일본입니다. 일본은 1998년부터 2012년까지 소비자물가가 누적 약 4% 하락하는, 전후 가장 길고 끈질긴 디플레이션을 겪었습니다 — BIS. 폭은 완만했지만 15년에 걸쳐 끈질기게 이어진 게 핵심입니다.
수치 4%가 작아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타격은 사람들의 기대에 새겨진 자국이었습니다. “어차피 안 오른다”는 믿음이 굳어지자 소비도, 투자도, 임금도 함께 얼어붙었습니다. 한번 굳은 디플레이션 심리는 좀처럼 녹지 않았고, 그래서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리던 것이 20년, 30년으로 늘어났습니다. 자산 시장이 받은 상처는 더 선명합니다.
닛케이225 지수는 1989년 12월 29일 38,915로 정점을 찍은 뒤, 그 고점을 다시 넘은 것이 34년 2개월 만인 2024년 2월 22일(종가 39,098)이었습니다 — Nippon.com. 1990년에 일본 주식을 산 사람은 2024년이 되어서야 본전을 찾은 셈입니다. 디플레이션이 한 세대의 자산을 통째로 묶어둘 수 있다는 걸, 일본은 30년에 걸쳐 보여줬습니다.
디플레이션이 최악으로 치달으면 — 1930년대 대공황
일본이 ‘느린 디플레이션’이었다면, 그 끝의 극단을 보여준 사건은 1929~1933년 미국 대공황입니다. 이 시기 미국 소비자물가는 약 25% 떨어졌고, 1932년 한 해에만 물가가 10% 넘게 빠졌습니다 —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물가가 무너지자 경제 전체가 함께 주저앉았습니다.
숫자가 참혹합니다. 실업률은 약 3%에서 **25%**로 치솟았고, 실질 생산은 약 3분의 1이 사라졌으며, 은행 약 7,000곳이 문을 닫았습니다 —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부채-디플레이션 나선이 교과서가 아니라 현실로 돌아간 것입니다. 물가가 내리자 빚이 무거워지고, 빚을 갚으려는 투매가 자산 가격과 물가를 더 끌어내리고, 그 바닥에서 기업과 은행이 줄줄이 쓰러졌습니다.
대공황이 남긴 교훈은 분명합니다. 인플레이션은 고통스럽지만 보통 ‘관리’의 영역입니다. 반면 통제를 벗어난 디플레이션은 경제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각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목표를 0%가 아니라 보통 2% 안팎의 플러스로 잡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0%에 너무 붙으면 작은 충격에도 마이너스, 즉 디플레이션으로 떨어질 수 있어서 일부러 완충 지대를 두는 것입니다.
지금, 눈앞의 실험 — 중국의 디플레이션
디플레이션은 역사책 속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중국이 겪고 있습니다. 중국 소비자물가는 2025년 8월 전년동월비 -0.4%를 기록했고 — 중국 통계국, 그해 9월에도 -0.3%로 마이너스가 이어졌습니다 — CNBC. 더 심각한 건 공장 출고가인 생산자물가(PPI)입니다. 2022년 가을부터 3년 넘게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갔습니다.
원인으로는 부동산 침체가 첫손에 꼽힙니다. 집값이 무너지자 가계 자산이 줄고, 불안해진 사람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수요가 가라앉은 것입니다. 2025년 중국 부동산 투자는 17.2% 감소했고, 미분양·공실 부담이 경제 전반을 짓눌렀습니다 — 세계은행·애틀랜틱카운슬. 중국은 2025년 한 해 평균 물가가 0% 안팎에 머물며 사실상 3년 연속 디플레이션 압력을 받았습니다. 연말 소비 진작책으로 플러스 전환에 성공했지만, “기다리면 싸진다”는 심리를 떼어내는 일이 얼마나 끈질긴 싸움인지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럼 한국은 괜찮나요 — 3%대 물가지만, 겪어본 적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 한국은 디플레이션과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2026년 5월 소비자물가는 전년동월비 +3.1% 올라, 한국은행 목표(2%)를 웃돕니다 — 기재부·통계청. 식료품·에너지를 뺀 근원물가도 2.5% 상승으로, 물가가 떨어지기는커녕 끈적하게 높은 편입니다. 한국의 당면 고민은 디플레이션이 아니라 좀처럼 2%로 안 내려오는 물가 쪽입니다.
다만 “우리는 영원히 무관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도 디플레이션의 문턱을 밟아본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2019년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4%를 기록했습니다. 월간 물가가 공식적으로 마이너스를 찍은 건 1965년 통계 작성 이래 처음이었습니다 — 한국일보. 당시 정부와 한국은행은 “저유가와 농산물 출하 증가에 따른 일시적 공급 요인이지, 수요 부진型 디플레이션은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섰습니다. 실제로 이듬해 물가는 다시 플러스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디플레이션은 한국에 ‘지금의 위협’은 아니지만 ‘아는 얼굴’입니다. 고령화로 소비 인구가 줄고 성장세가 둔해지는 구조는 멀리 보면 일본이 걸었던 길과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당장의 경계 대상은 아니더라도, “물가가 너무 안 오른다”는 뉴스가 마냥 반가운 소식만은 아니라는 감각은 가져둘 만합니다.
디플레이션 뉴스, 이렇게 읽으면 됩니다
복잡해 보여도, 물가 하락 뉴스를 만났을 때 던질 질문은 세 가지면 충분합니다.
- ‘왜’ 떨어지나 — 공급인가, 수요인가. 기술 발전·생산성으로 싸진 거라면 좋은 디플레이션에 가깝습니다. 안 팔려서 어쩔 수 없이 내린 거라면 경계해야 할 나쁜 디플레이션입니다. 같은 가격표 하락도 원인이 정반대라는 걸 기억하세요.
- ‘얼마나’ 이어지나 — 한 달인가, 추세인가. 명절·유가 같은 일시적 요인으로 한두 달 빠지는 건 디플레이션이 아닙니다. 여러 달, 여러 분기에 걸쳐 전반적인 물가가 내려가는 ‘지속성’이 진짜 신호입니다.
- 소비자물가만 보지 말고 생산자물가·자산값도 본다. 중국처럼 공장 출고가(PPI)가 먼저, 오래 마이너스로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집값·주가 같은 자산 가격이 함께 빠지는지도 부채-디플레이션의 조기 경보입니다.
물가를 예측하는 건 전문가도 늘 틀리는 영역입니다. 하지만 물가 하락이 왜 위험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은 예측이 아니라 이해의 영역입니다. 후자만 갖춰도, “싸지면 좋지 뭐”라는 말 뒤에 숨은 위험을 한 번 더 의심하게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디플레이션과 디스인플레이션은 뭐가 다른가요?
디스인플레이션은 물가가 여전히 오르되 상승 속도만 느려지는 것이고(상승률은 양수), 디플레이션은 물가 자체가 내려가는 것입니다(상승률이 음수). IMF는 디플레이션을 ‘소비자물가지수 같은 물가 지표의 지속적 하락’으로 정의합니다 — IMF. 한 달 반짝 하락이 아니라 여러 달·여러 해에 걸친 전반적 하락이 핵심입니다.
물가가 떨어지면 소비자한테 좋은 거 아닌가요?
장 볼 때 한 번은 좋습니다. 문제는 그게 ‘계속’ 이어질 때입니다. ‘다음 달 더 싸진다’는 생각이 퍼지면 소비를 미루고, 매출이 줄어든 기업이 임금·고용을 줄이고, 소득이 줄어 다시 소비가 막히는 악순환이 생깁니다. 한 사람에게 합리적인 ‘기다림’이 모이면 경제 전체가 식습니다.
‘좋은 디플레이션’도 있다는데 뭔가요?
물가가 ‘왜’ 떨어지느냐가 갈림길입니다. 반도체·스마트폰처럼 기술이 좋아져 같은 돈으로 더 나은 물건을 사게 되는 공급·생산성發 하락은 ‘좋은 디플레이션’에 가깝습니다. 반대로 안 팔려서 어쩔 수 없이 값을 내리는 수요 붕괴形 하락이 ‘나쁜 디플레이션’입니다. IMF도 이 둘을 구분해 분석합니다 — IMF.
일본은 왜 디플레이션에서 빠져나오기 그렇게 힘들었나요?
한번 굳어진 ‘안 오른다’는 기대가 소비·투자·임금을 함께 묶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1998년부터 2012년까지 소비자물가가 누적 약 4% 하락했고 — BIS, 닛케이225는 1989년 고점을 34년 만인 2024년 2월에야 회복했습니다 — Nippon.com. 마이너스 금리(2016~2024)까지 동원한 끝의 결과였습니다.
지금 중국이 디플레이션이라는데, 한국도 위험한가요?
지금 한국은 디플레이션과 거리가 멉니다. 2026년 5월 소비자물가는 전년동월비 +3.1%로 오히려 목표(2%)를 웃돕니다 — 기재부·통계청. 반면 중국은 2025년 8월 CPI가 -0.4%, 생산자물가는 3년 넘게 마이너스였습니다 — 중국 통계국·CNBC. 다만 한국도 2019년 9월 사상 첫 마이너스 물가를 겪은 적이 있습니다.
디플레이션이 오면 개인은 어떻게 대비하나요?
이 글은 투자 권유가 아니라 원리를 설명하는 교육용 글이라 정답을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디플레이션의 본질이 ‘현금의 가치는 오르고 빚의 실질 부담은 커지는’ 환경이라는 점은 알아둘 만합니다. 무리한 빚, 경기 흐름, 물가 발표를 평소보다 한 번 더 들여다보는 정도가 현실적입니다.
마무리
디플레이션의 8할은 한 문장입니다. 물가가 ‘계속’ 떨어지면, 사람들은 소비를 미루고 빚은 무거워지며 중앙은행의 무기까지 막힌다. 그래서 적당한 인플레이션보다 디플레이션을 더 무서워하는 것이고, 각국이 물가 목표를 0%가 아니라 2% 안팎의 플러스로 잡아 완충 지대를 두는 것입니다.
오늘 챙길 한 가지는 간단합니다. 앞으로 “물가가 떨어졌다”는 뉴스를 보면 반사적으로 좋아하기 전에, ‘왜, 얼마나’ 떨어졌는지를 한 번 더 묻는 것. 공급이 좋아져 싸진 것인지, 수요가 무너져 싸진 것인지에 따라 그 뉴스의 의미는 정반대가 됩니다.
그리고 한 발 더. 이 모든 이야기의 뿌리에는 ‘돈의 가격’인 금리가 있습니다. 중앙은행이 왜, 어떻게 금리를 움직이는지는 기준금리 글 — 한국은행이 내 대출이자를 움직이는 구조에서, 시중의 돈이 어떻게 빚으로 불어나는지는 신용창조 글에서 이어 읽으면, 디플레이션이 왜 그토록 다루기 어려운 상대인지가 한 줄로 꿰어집니다.
참고 자료
- IMF — Deflation: Determinants, Risks and Policy Options (디플레이션 정의: 물가 지표의 지속적 하락, 공급·수요 요인 구분). 2003. 2026-06-14 확인. 자료 보기
-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 “What is deflation and how is it different from disinflation?” (디플레이션 vs 디스인플레이션 차이). 1999. 2026-06-14 확인. 자료 보기
- Irving Fisher — “The Debt-Deflation Theory of Great Depressions” (Econometrica, 부채-디플레이션 나선 이론 원문). 1933-10. 2026-06-14 확인. 자료 보기
- BIS — “Japan’s growth and deflation: two lost decades?” (BIS Quarterly Review, 1998~2012 소비자물가 누적 약 -4%). 2015-03. 2026-06-14 확인. 자료 보기
- Nippon.com — “Nikkei Index Sets First Record High Since 1989” (1989-12-29 고점 38,915.87 → 2024-02-22 39,098.68 회복). 2026-06-14 확인. 자료 보기
- CNBC — “Bank of Japan ends the world’s only negative rates regime” (BOJ 2016-01 마이너스 도입 → 2024-03-19 해제). 2024-03-19. 2026-06-14 확인. 자료 보기
-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 “The Risk of Deflation” (Economic Letter, 1929~33 소비자물가 약 -25%, 1932년 -10% 초과). 2009-03. 2026-06-14 확인. 자료 보기
-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David C. Wheelock) — “The Great Depression: An Overview” (실업률 3%→25%, 실질 생산 약 -1/3, 은행 약 7,000곳 파산). 2026-06-14 확인. 자료 보기
- 중국 국가통계국(NBS) — “Consumer Price Index in August 2025” (2025년 8월 CPI 전년동월비 -0.4%, 식품 -4.3%·돼지고기 -16.1%). 2025-09-11. 2026-06-14 확인. 자료 보기
- CNBC — “China’s consumer prices fall, producer deflation extends” (2025년 9월 CPI -0.3%, PPI 3년 연속 마이너스, 이후 연말 플러스 전환). 2025-10·11. 2026-06-14 확인. 자료 보기
- 세계은행 — China Economic Update (2025년 부동산 투자 -17.2%, 소비 위축과 디플레이션 압력). 2025. 2026-06-14 확인. 자료 보기
- 애틀랜틱카운슬 — “China’s property slump deepens” (부동산 침체가 가계 자산·소비로 전이되는 경로 분석). 2026-06-14 확인. 자료 보기
- 기획재정부·통계청 — “2026년 5월 소비자물가동향” (전년동월비 +3.1%, 근원물가 +2.5%). 2026-06. 2026-06-14 확인. 자료 보기
- 한국일보 —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0.4%… 사상 첫 공식 ‘마이너스’” (1965년 통계 작성 이래 첫 월간 마이너스, 공급 요인 일시적 판단). 2019-10-01. 2026-06-14 확인. 자료 보기
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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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자 권유 아님: 본 글은 디플레이션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는 교육용 콘텐츠이며, 특정 금융상품 가입·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물가·지표 수치는 작성일(2026-06-14) 기준이며 이후 변동될 수 있습니다.